 최근 불거진 롯데 그룹의 내홍(內訌, 집단 또는 조직 내부적으로 일으킨 분쟁)은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롯데 그룹을 창업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두 아들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과 신동빈 한국 롯데 회장 간에 경영권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형제 간 ‘전쟁’은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일단 마무리됐다. 하지만 롯데 가(家)의 분쟁은 총수 일가에 의한 기업 사유화(私有化)의 전형 아니냐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밀실경영’이 ‘형제의 난’으로 치달아 1940년대 일본에 롯데제과를 세워 돈을 번 신격호 명예회장은 1967년 한국에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신 명예회장은 이후 호텔, 백화점, 관광, 제조업으로 사업을 확대해 막강한 영토를 구축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두 형제에게 엇비슷하게 지분을 나눠주고 일본 롯데는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한국 롯데는 신동빈 회장에게 경영을 맡겼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 주요 직책에서 해임되면서 두 형제 간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났다. 신동빈 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일본 롯데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러자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가족들을 규합해 신 회장에 맞섰다. 올해 7월 27일 신격호 명예회장을 비밀리에 일본으로 모셔가 신동빈 회장 등 일본 롯데홀딩스 임원 6명에 대한 구두해임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대해 신동빈 회장은 다음날 긴급 이사회를 열고 아버지인 신격호 회장을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하고 명예회장으로 추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형제의 난은 8월 17일 일본에서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빈 회장이 완승함에 따라 일단 막을 내렸다. 롯데 그룹의 형제 간 싸움은 대한민국 재계 5위인 대기업의 경영이 구멍가게만도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중요한 의사 결정이 오너에 의해 밀실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비난이 일었으며, 불투명한 지배구조도 도마 위에 올랐다. 사실 롯데그룹만큼 베일에 쌓여온 기업도 드물다.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구조로, 일본 롯데는 일본 기업이기 때문에 일본 현지 법에 따라 출자 관계를 공개할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롯데 계열사 가운데 비상장사가 많다는 점도 한 이유였다. 80여 개의 롯데 계열사 중 상장사는 8개다. 이 80여 개의 계열사는 무려 416개의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로 연결됐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6월 말 현재 신씨 일가의 한국 롯데 지분은 2.41%에 그친다”며, “이렇게 적은 지분으로 80여 개 기업을 지배하려면 순환출자라는 고리가 필수”라고 전했다. 분쟁 과정에서 거미줄처럼 얽힌 국내 롯데 그룹의 정점에는 호텔롯데가 있고, 이 호텔롯데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일본 롯데 계열 L투자회사들이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일본 롯데홀딩스는 일본의 비상장사인 광윤사가 대주주인 것으로 밝혀졌다. 광윤사 주식은 신격호·신동주·신동빈 등 신씨 일가가 대거 갖고 있다. 롯데쇼핑·롯데제과·롯데건설·롯데물산 등은 호텔롯데가 거느리고 있다. 순환출자 줄이고 기업지배구조 단순화해야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는 회사의 중요의사를 결정하고 행사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기업지배구조는 크게 전문 경영인 체제와 오너 중심의 가족경영 체제로 나눌 수 있다. 전문 경영인 체제는 경영자 독단에 따른 폐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단기 실적을 중심으로 기업을 경영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가족경영은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으나 자칫 의사결정이 독단에 흐를 수도 있다. 순환출자(循環出資)란 같은 그룹에 속한 기업들이 돌아가면서 서로 자본을 대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그룹안에서 100억 원의 자본금을 가진 A사가 B사에 50억 원을 출자하고, B사는 C사에 30억 원을 출자하며, C사는 다시 A사에 10억 원을 출자하는 방식으로 자본금과 계열사 수를 늘릴 수 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과 상법은 두 계열사 간에 서로 자본금을 대는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있다. 순환출자는 규제하지 않았으나 2014년 7월부터는 신규 순환출자에 한해 금지하고 있다. 신씨 일가가 2.4%의 적은 지분으로 한국 롯데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순환출자 때문이다. 순환출자는 그래서 대기업 오너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장악하는 ‘황제 경영’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렇지만 순환출자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순환출자는 한국 경제발전 과정에서 자금이 부족했던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외국의 대기업 가운데서도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기업들이 적지 않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Wallenberg Group), 미국의 월마트(Wal-Mart)나 포드자동차(Ford Motor Company), 이탈리아의 피아트 그룹(Fiat SpA) 등이 대표적이다. 포드의 경우 총수 일가 지분이 1.9%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 기업들도 순환출자를 줄이고 지배구조를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많은 대기업들이 당장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려면 기업마다 수조 원 이상이 필요하다. 사업에 쓰여야 할 돈을 지배구조 개선에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면서 기존의 순환출자는 단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순환출자 해소보다 더 시급한 것은 부실 경영인이나 오너를 퇴출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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